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
보좌시리즈 06
말씀을 읽는 자리에서
말씀에 의해 읽히는 자리로
성경 66권을 정보와 지식으로 정복하는 독서가 아니라, 하나님 임재 가운데 말씀 앞에 머물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의 만나를 받아먹고, 존재가 말씀의 통치 아래 다시 정렬되는 17주 120일의 성경일독 여정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
(신명기 8:3)
이 책은
성경을 더 많이 읽기 위한 책이 아니라, 하나님 임재 가운데 말씀 앞에 앉아 그 말씀이 내 존재를 읽고 새롭게 빚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성경일독의 여정입니다.
이 책의 시작에는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만나는 이미 내려오고 있는데, 그것을 담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는가?”
하늘에서 생명의 말씀이 만나처럼 내려오는 것을 보았던 한 번의 경험은 성경일독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습니다. 말씀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말씀을 받아 담을 존재의 그릇이 준비되어 있는가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일독은 더 많은 정보를 축적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날마다 내려오는 생명의 말씀을 받아먹기 위해 광주리를 준비하는 삶의 리듬이 됩니다.
이 책은 성경 66권을 하나의 큰 이야기로 읽습니다. 모세의 출애굽에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궁극적인 출애굽을 바라보고,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읽으며 신약에서 약속의 성취를 봅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께 도달하기 위해 애쓴 기록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찾아오시고 자기 백성을 자신의 임재와 통치 안으로 이끄시는 구속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일독의 자리는 단순한 독서의 자리가 아닙니다. 아침저녁으로 임재 가운데 머물고, 말씀 앞에 조용히 앉습니다. 이해하려는 조급함보다 경청을 앞세우고, 말씀을 판단하고 분석하는 주체로 서기보다 성령께서 그 말씀을 심중에 새기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립니다.
그때 말씀은 밖에서 들려오는 정보에 머물지 않습니다. 심중에 심겨진 말씀이 되어 혼을 구원하고, 생각과 말과 몸의 삶을 다시 정렬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 안에서 말씀이 생명으로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이 책의 17주 120일 여정은 출애굽과 광야, 가나안과 왕국, 선지자와 포로기, 새 언약과 새 창조를 지나 마침내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릅니다. 시작의 에덴에 흩어져 있던 금과 보석의 이미지는 마지막 새 예루살렘의 완성된 영광으로 이어지며, 성경 전체는 창조에서 새 창조로, 임재에서 완전한 연합으로 흐르는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 여정에서 우리는 계속 같은 질문을 만납니다.
누가 왕인가?
누가 말씀을 읽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내 존재는 누구의 통치 아래 있는가?
성경일독은 내가 말씀을 소유하는 일이 아닙니다.
말씀이 나를 읽고, 말씀의 통치가 나를 다시 빚어 가는 사건입니다.
이 책에서 따라갈 길
출애굽에서 시작하여 왕국과 포로기, 새 언약과 새 창조를 지나 어린양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성경 66권을 하나님 임재와 통치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따라갑니다.
고통에서 출애굽의 문이 열리다 — 1~3주 차
고통과 괴로움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문제로만 보지 않고, 자기 통치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돌이키도록 부르시는 구원의 메신저로 읽습니다.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작은 공동체가 은혜로 거룩한 민족이 되고, 광야에서 사람이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가나안과 왕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배우다 — 4~7주 차
약속의 땅은 인간의 자격과 힘으로 차지하는 땅이 아니라 은혜와 믿음으로 살아가는 땅임을 배웁니다. 두 왕의 이야기를 지나 지혜와 여호와 경외를 배우며, 마침내 왕들의 벌판에서 한 가지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왕이시다.”
선지자들을 통해 거룩과 회복을 보다 — 8~9주 차
이사야를 통해 거룩과 구속이 만나고, 예레미야를 통해 뽑고 허무는 심판이 다시 세우고 심는 회복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의 손길을 봅니다.
성전의 붕괴와 포로지에서 참된 성소를 발견하다 — 10~13주 차
예루살렘과 성전이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역사를 다시 읽습니다. 바빌론이라는 낯선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친히 백성의 성소가 되어 주심을 배우며, 새 언약과 새 창조를 향한 기다림이 깊어집니다.
욥의 끝에서 새 창조의 왕을 만나다 — 14주 차
욥기를 통해 인간의 자기 의와 자기 통치가 끝나는 자리를 지나, 마태복음에서 임마누엘의 왕이 오셔서 새 언약과 새 창조를 시작하시는 복음을 만납니다.
현재천국과 부활 생명을 살아가다 — 15~16주 차
요한 공동체를 통하여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임재 아래 살아가는 천국을 보고, 사도들과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가 부활 생명으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길을 따라갑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다 — 17주 차와 결론
성경의 마지막에서 역사의 목적을 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생명수가 흐르고, 성령과 신부가 “오십시오”라고 외치는 새 창조의 완성을 믿음의 실상으로 품으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성경의 시작과 끝에는 같은 하나님이 계십니다.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구속하시고, 마침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십니다.
목 차
들어가면서
이 책에 대하여
1주 차
고통과 괴로움은 구원의 메신저
2주 차
야곱의 허리에서 꺼낸 거룩한 민족
3주 차
오직 믿음임을 뼈저리게 깨닫는 광야
4주 차
오직 은혜로 다스려지는 땅, 가나안
5주 차
기름 부음을 받은 두 왕 이야기
6주 차
참지혜를 배우자 로 모신 여호와 경외
7주 차
왕들의 벌판을 달리며 선포:
하나님이 왕이시다!
8주 차
거룩과 구속의 만남 속에 임하시는 주의 영
9주 차
허무는 사역에서 세우는 회복의 사역으로
10주 차
천국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재구성
11주 차
아버지 집과 보좌를 상징하는
예루살렘과 성전
12주 차
바빌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13주 차
새 언약과 새 창조를 향한
마지막 기다림, 여정의 완성
14주 차
옛 자아의 종결과 보좌의 통치:
새 창조의 시작
15주 차
주 임재 아래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천국
16주 차
주와 연합된 혼의 부활능력으로 재림준비
17주 차
혼인잔치가 펼쳐지는 영원한 주의 나라
결론(120일째): 창조의 시작과 완성
부록
하나님 임재와 성경일독
17주 120일 읽기표


창조의 시작에서 새 창조의 완성까지
성경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빛이 있으라.”
그리고 성경은 다시 하나의 도성으로 끝납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의 임재가 온 도성을 가득 채웁니다.
에덴에 원재료처럼 놓여 있던 금과 보석의 이미지는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의 완성된 도성의 영광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가 향하는 방향을 보여 줍니다.
창조에서 새 창조로.
분리에서 연합으로.
자기 통치에서 하나님의 통치로.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선과 악의 기준이 되려 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 자신이 판단의 중심에 섰고, 그 결과 관계에는 정죄가 들어오고 세상에는 폭력과 죽음이 번져 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약속을 믿는 한 사람을 통하여 민족을 세우시고,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을 이루셨으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새 언약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선악 판단의 주체로 세웠던 옛사람의 질서가 심판받고, 부활 안에서 새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을 삶의 최종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성경일독의 목적은 성경을 끝까지 읽었다는 성취에 있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 앉아 내가 끝나고, 말씀이 나 를 읽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생각과 말과 몸을 통하여 살아나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고, 혼은 은혜의 보좌 앞에서 그 연합의 실재에 참여하며, 몸은 장차 주님의 재림과 함께 완전한 영광으로 새로워질 것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더 이상 특정한 장소만 성전이 아닙니다.
주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이시며,
하나님의 임재가 모든 것을 가득 채웁니다.
성령과 신부가 외칩니다.
“오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그렇다. 내가 속히 오리라.”
그러므로 말씀 앞에 앉아 120일의 길을 걸어온 우리도 응답합니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