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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시리즈 03

지금 여기, 숨으로 주님을 만나다

존재 교체를 호흡과 일상으로 살아내는 70일의 임재 훈련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연합과 존재 교체를 토대로, 말씀과 기도와 호흡의 리듬 속에서 생각과 감정과 몸을 주님의 통치에 다시 정렬하며 ‘지금 여기’ 하나님의 임재를 살아가는 실천적 존재 전환의 여정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요한복음 15:4)

이 책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존재 교체를, 70일 동안 말씀과 기도와 호흡과 일상의 몸으로 살아내도록 돕는 임재 훈련서입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복음은 우리가 이루어 내야 할 목표가 아닙니다.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이미 주어진 새로운 존재의 실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몸에는 여전히 오랫동안 익숙해진 자기 통치의 반응이 남아 있습니다. 상황에 즉시 흔들리고, 과거의 기억에 붙들리며, 미래의 염려를 미리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 책은 존재를 다시 ‘지금 여기’로 부릅니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이라는 심리적 시간에서 벗어나, 영원히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지금 이 순간을 구속된 시간으로 살아가도록 초대합니다.

그 중심에는 임재 호흡기도가 있습니다. 천천히 숨을 쉬며 들숨에 “그리스도 안에서”, 날숨에 “아버지 사랑으로” 고백합니다. 이것은 호흡 자체에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내 안에 말씀과 성령으로 거하시는 그리스도께 생각과 시선을 돌리고, 자기 통치의 속도를 멈추어 그분의 임재를 믿음으로 의식하는 복음적 훈련입니다.

이 70일의 여정은 성경의 출애굽과 계승의 길을 따라갑니다. 이집트의 고통을 구원의 메신저로 알아차리고, 홍해에서 옛 구조와 결별하며, 광야와 길갈을 지나 존재의 정체성을 회복합니다. 벧엘에서는 아버지 집의 생명을 누리고, 여리고에서는 자기 통치의 견고한 성벽을 지나며, 요단강에서는 자신의 주도권을 주님께 버려버리는 깊은 순복을 배웁니다.

여기서 존재 교체와 존재 전환은 구별됩니다. 존재 교체는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단번에 이루어진 주체의 교체입니다. 존재 전환은 이미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가 혼에서 그 연합을 의식하며 시선을 다시 주님께 돌리고, 생각과 감정과 몸을 통하여 그 생명을 살아가는 과정입니다. 새 생명을 얻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이미 받은 생명이 삶 전체로 나타나는 길입니다.

메마름과 무기력도 실패로만 읽지 않습니다. 감정적으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외적 감각과 자기 노력에 의존하던 습성이 멈추면서, 더욱 깊은 연합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침묵은 반드시 거리의 증거가 아니라, 때로는 너무 가까워 말이 필요 없는 연합의 자리가 됩니다.

그렇게 70일이 지나면 기도는 특정 시간에 ‘하는 일’에 머물지 않습니다. 말씀과 고백과 침묵과 호흡을 통하여 하루의 평범한 순간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리로 열리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생각과 감정과 몸, 관계와 일상을 통하여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70일의 훈련은 끝날 수 있지만,

하나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그때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이 책에서 따라갈 길

혼의 구원 여정을 조망하는 데서 시작하여, 이집트와 홍해, 광야와 길갈, 벧엘과 여리고와 요단강을 지나 부활 생명과 절대안식에 이르는 10주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혼의 구원 여정을 바라보다 — 1주 차
영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가 혼에서 그 연합을 의식하고, 몸을 통하여 그 생명이 살아지는 전체 여정을 먼저 바라봅니다.

이집트와 홍해 — 2~3주 차
고통과 불편함을 즉시 제거해야 할 문제로만 보지 않고, 자기 통치의 자리에서 깨어나도록 부르시는 구원의 메신저로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감정과 상황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광야와 길갈 — 4~5주 차
자기 힘과 자기 기준이 생명의 근원이 아님을 배우며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말씀에 서기 시작합니다. 죄와 수치의 기억이 존재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못하도록 하고, 새로운 피조물로서 자신을 받아들입니다.

벧엘과 여리고 — 6~7주 차
아버지 집에 거하는 정상적인 믿음의 삶을 배우며,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은 실상으로 받아들입니다. 메마름 속에서도 주님의 임재를 떠나지 않고 더 깊은 친밀함으로 나아갑니다.

요단강 — 8주 차
생각과 감정과 몸을 존재의 주인으로 삼지 않고, 자기 통치의 마지막 주도권까지 주님께 버려버립니다. 무기력과 침묵마저 실패가 아니라 더 깊은 순복으로 들어가는 자리로 받아들입니다.

부활 생명과 혼의 연합 — 9주 차
그리스도를 흉내 내려고 애쓰는 삶에서 벗어나, 이미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생각과 감정과 몸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존재를 정렬합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절대안식 — 10주 차
과거와 미래에 끌려가는 심리적 시간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상을 품습니다. 위를 향한 자기 활동을 멈추는 아나파우시스와 하나님의 통치 안에 깊이 정착하는 카타파우시스를 함께 살아갑니다.

머무름은 이미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몸과 일상으로 흘러가는 존재의 방식입니다.

목 차

들어가며

이 책에 대하여

전체 여정 개요


1주차  혼의 구원 여정 전체 스케치

2주차  이집트 – 고통을 구원의 메신저로 인식

3주차  홍해 – 메신저에 응답하는 믿음의 확신

4주차  광야 → 가나안 –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말씀으로

5주차  길갈 – 출애굽 여정의 완성과 계승 여정의 시작 (성경적 내적치유)

6주차  벧엘 – 아버지 집에서의 정상적인 믿음 생활

7주차  여리고 – 더 깊은 친밀함을 향한 전진

8주차  요단강 – 내어 맡김과 순전한 헌신 (영혼의 어두운 밤)

9주차  그리스도 안에서 – 부활 생명과 혼의 연합

10주차 그리스도 안에서 – 믿음의 실상, 어린양의 혼인잔치, 절대안식


결론 – 하나됨의 자리에서 들려오는 말씀

부록 1  지금 여기, 존재와 몸으로 드러나는 임재의 여정


부록 2  하나님 임재 호흡기도와 존재의 전환 설명서

이 책을 형성한 신학적 자원들

존재의 복음이 나의 존재로 드러납니다

70일 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더 많이 느끼는 방법만을 연습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난 존재가, 그 연합을 혼에서 의식하고 몸을 통하여 살아가는 길을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말씀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주님의 뜻을 더 분명히 알고 싶었고, 강한 임재와 분명한 응답을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연합이 깊어지면서 다른 자리로 옮겨갑니다.

주님은 더 이상 멀리서 말씀만 건네시는 분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며 자신의 생명을 살아가시는 분입니다.

때로 침묵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침묵이 반드시 거리감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씨앗으로 주어진 말씀이 존재 안에서 자라나 숨결과 선택과 몸의 삶으로 열매 맺기 시작할 때, 우리는 말씀을 기다리는 자리에서 말씀과 연합하여 살아가는 자리로 옮겨갑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 말씀이 이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는 그 말씀 안에 거합니다. 그래서 임재는 특정 시간의 강한 경험에 머물지 않습니다. 숨과 생각, 감정과 몸, 관계와 일터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나는 더 이상 혼자의 생명으로 살지 않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하십니다.

이제 복음은 입술의 설명만이 아니라 존재를 통하여 전해집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주님의 평강이 흐르고,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지며, 평범한 삶터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거처가 됩니다.

그리고 이 생명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3권에서 한 영혼의 몸과 일상으로 체현된 임재는 다음 여정인 4권 『보좌의 쉼, 몸을 통한 통치』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와 하나님 나라의 통치로 확장됩니다.

존재의 교체에서 혼의 정렬로,
혼의 정렬에서 몸의 순복으로,
몸의 순복에서 공동체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로.

70일의 훈련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당신 안의 하나님 임재는 지금 여기에서 계속됩니다.

지금 여기,
당신의 존재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세상 가운데 드러나십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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