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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 요한서신

성경시리즈 08

존재란 누가 사는가의 문제입니다
내 안에 머무시는 그리스도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은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신 성육신에서 시작하여, 십자가에서 내가 주인 된 옛 존재가 끝나고, 그리스도 안에 머물며 그분의 생명이 몸과 관계와 공동체를 통하여 살아지는 존재 연합의 복음을 보여 줍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이 책은

말씀이 우리의 장막이 되시고 우리가 그분의 거처가 되어,

‘내가 사는 존재’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존재’로 옮겨지는 연합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요한복음은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존재란 무엇인가? 요한의 대답은 철학적 정의보다 더 구체적입니다. 존재는 결국 “내 안에 누가 사는가”의 문제입니다. 내가 나의 삶을 붙들고 통치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하시며 그분의 생명을 살아가시는가.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은 바로 이 존재의 주권 교체를 증언합니다.

그 시작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성육신입니다. 여기서 ‘거하시다’는 말은 장막을 치다(ἐσκήνωσεν)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분으로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역사와 몸 안으로 들어오셔서 장막을 치셨습니다. 복음은 인간이 하나님께 올라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오셔서 마침내 사람을 자신의 거처로 삼으시는 새 창조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그 성육신의 장막이 어떻게 ‘머무름(Meno)의 계보’로 깊어지는지를 따라갑니다.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자리에서 시작하여, 생명의 떡을 먹고 마시며 그분 안에 거하고, 말씀 안에 머물며 자유를 얻고, 마침내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는 생명의 연합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 머무름은 요한서신에서 빛과 사랑과 진리 안에 함께 거하는 공동체의 사귐으로 확장됩니다.

이 연합은 예수님을 밖에서 흉내 내는 종교적 모방이 아닙니다. 요한이 반복하는 ‘같이(καθώς, Kathōs)’의 문법은 아버지와 아들의 생명과 사랑 안에 우리가 참여하는 삶을 보여 줍니다. 그분처럼 되기 위해 자기 힘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처럼 그 생명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과 순복이 몸을 통하여 열매 맺는 것입니다.

그 절정은 십자가입니다.

 

“다 이루었다(Tetelestai)”라는 선언과 함께 자기 통치로 살아가던 옛 존재의 길은 종결되고,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새 창조를 비추는 표지가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새 생명의 시작을 알리십니다. 그리고 스스로 띠를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던 베드로는 이제 다른 이에게 띠 띠워 이끌리는 순복된 몸의 길로 부름받습니다.

요한서신은 그 생명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빛 가운데 걷고, 서로 사랑하며, 진리 안에 머물고, 자신의 마음이 정죄할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다”는 은혜 안에 쉽니다. 으뜸이 되려는 디오드레베의 욕망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넘어 앞서가려는 ‘프로아곤’을 거절하고, 단순히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삶을 배웁니다.

마침내 “네 영혼이 잘됨 같이”라는 요한삼서의 형통은 세속적 성공의 약속이 아니라 존재의 형통으로 읽힙니다. 자기 통치를 버린 혼이 한 영 됨에 참여하여 본래의 안식처로 돌아오고, 생각과 감정과 몸의 삶까지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정렬되어 가는 것—이것이 요한이 보여 주는 참된 형통입니다.

말씀이 내 삶의 집이 되고 내가 하나님의 장막이 될 때,

존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살아냅니다.

이 책에서 따라갈 길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은 말씀이 장막을 치시는 성육신에서 시작하여, 십자가와 부활을 지나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존재가 사랑의 공동체로 살아지는 길을 보여 줍니다.

말씀이 장막을 치시고 새로운 존재를 부르시다
영원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십니다. 니고데모에게는 위로부터 태어나는 생명을,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며 자기 통치의 낡은 존재에서 새로운 존재로 부르십니다.

그리스도를 먹고 말씀 안에 머물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시며 “내가 곧”이라고 자신을 계시하시는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은 외부의 종교적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존재의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상호 거함의 삶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생명으로 연합되다
요한복음의 머무름은 15장에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연합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만들어 내지 않듯, 성도는 그리스도의 생명에 붙어 그분의 사랑과 신실함에 참여합니다. ‘카토스’는 흉내의 명령이 아니라 생명에 참여하는 연합의 문법이 됩니다.

테텔레스타이와 부활의 숨으로 새 창조가 시작되다
십자가의 “다 이루었다”에서 옛 자기 통치의 길이 끝납니다. 옆구리의 피와 물, 빈 무덤과 부활의 숨을 지나 새로운 공동체가 탄생하고, 스스로 띠 띠던 몸은 주님의 이끄심에 자신을 내어 드리는 순복의 몸으로 바뀝니다.

빛과 사랑과 진리 안에서 함께 머물다
요한서신에서 머무름은 개인적 체험을 넘어 공동체가 됩니다. 빛 가운데 서로 사귀고, 사랑으로 서로를 품으며, 자신의 마음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진리 안에 함께 거합니다.

으뜸과 지나침을 버리고 참된 형통을 살아가다
디오드레베처럼 으뜸이 되려는 욕망과 그리스도의 교훈보다 앞서 나가려는 조급함을 버려버립니다. 혼이 자기 통치를 멈추고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여 본래의 안식처를 찾을 때, 삶은 하나님께 바르게 인도되는 참된 형통으로 열립니다.

머무름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몸과 관계와 공동체를 통하여 흘러가는 존재의 방식입니다.

목 차

들어가면서 — 존재란 누가 사는가의 문제입니다

제1부 존재를 계시하시는 말씀

(요한복음 1–12장)

1장 말씀이 육신이 되어 존재를 드러내시다
2장 존재를 부르시는 그리스도
3장 존재를 계시하시는 그리스도
4장 존재를 공급하시는 그리스도

제2부 존재를 연합시키시는 그리스도

(요한복음 13–17장)

5장 존재는 사랑으로 연합됩니다
6장 존재는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7장 존재는 하나 됨으로 완성됩니다

제3부 존재를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

(요한복음 18–21장)

8장 십자가에서 옛 존재가 끝나다
9장 성령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시작되다

제4부 존재가 공동체가 되다

(요한1·2·3서)

10장 존재는 빛 가운데 걷습니다
11장 존재는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12장 존재는 진리 안에 머뭅니다
13장 존재는 영혼의 형통으로 완성됩니다

나가면서 — 존재는 통치가 됩니다

참고자료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우리는 오랫동안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복음은 질문의 방향을 바꿉니다. 존재는 내가 나를 무엇으로 만드는가가 아니라, 내 안에 누가 사시는가의 문제입니다. 십자가의 “다 이루었다” 안에서 내가 주인 된 옛 존재의 길은 끝났고,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안에 새 창조의 숨을 불어넣으십니다.

이제 신앙은 더 앞서가고 더 특별해지려는 일이 아닙니다.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처럼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도록 자신을 내어 드리는 삶입니다. 혼이 자기 통치를 버리고 한 영 됨에 참여하여 보좌의 쉼에 거할 때, 그 생명은 생각과 감정, 말과 관계와 몸을 지나 사랑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 머무름은 혼자만의 안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빛 가운데 서로 사귀고, 자신의 마음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평범한 식탁에서 서로를 사랑할 때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살아 있는 장막이 됩니다. 말씀은 다시 몸을 얻고, 그리스도의 생명은 공동체 안에서 보이며, 존재는 마침내 통치가 됩니다.

말씀이 나의 집이 되고 내가 주님의 장막이 될 때, 오늘 여기에서 영생이 살아집니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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